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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체인 금융에서 진짜 부족한 건 하이브리드 인재가 아니다 DeFi 2.0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빠지지 않는 결론이 있다. 전통 금융의 리스크 프레임워크와 온체인 엔지니어링을 동시에 아는 '하이브리드 인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내가 최근 몇 건의 Crypto Quant·Web3 인프라 채용을 진행하며 확인한 병목은 조금 더 좁고 구체적이었다. 기업들이 진짜 아쉬워한 건 두 도메인을 다 아는 사람이 아니라, 오라클이 잘못된 값을 줄 때 그걸 알아채고 멈출 줄 아는 사람이었다. 오라클 지연 3초가 만든 채용 공고 한 크립토 퀀트 팀에서 벌어진 일이다. 담보 가치를 실시간으로 평가해 청산 여부를 자동 판단하는 시스템을 붙였는데, 특정 거래소의 가격 피드가 3초쯤 지연되는 순간이 있었다. 그 짧은 시차 동안 시스템은 실제보다 낮은 담보 가치를 '진실'로 받아들였고, 정상 포지션 몇 건이 불필요하게 청산됐다. 모델 자체는 정교했다. 문제는 모델이 아니라, 들어오는 데이터를 의심 없이 믿은 구조였다. 그 사고 이후 팀이 새로 연 자리는 '알고리즘을 더 정교하게 짤 퀀트'가 아니라 '데이터 소스의 신뢰도를 실시간으로 평가할 리스크 엔지니어'였다. 기술은 이미 충분히 정교했다. 부족했던 건 그 정교함을 어디까지 믿어도 되는지 판단하는 눈이었다. 엔지니어링 역량은 이미 상향평준화됐다 스마트 컨트랙트를 안정적으로 짜고 MEV를 최적화하는 능력은 이제 이 시장에 진입하려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갖추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희소했던 스킬이 표준이 됐다는 뜻이다. 그런데 표준이 된 능력은 몸값을 크게 움직이지 않는다. 값이 매겨지는 곳은 늘 남들이 아직 갖추지 못한 지점이다. 지금 그 지점은 코드가 아니라 판단이다 — 이 오라클을 믿을 것인가, 이 유동성 지표가 조작 가능한 구간인가, 이 리스크 모델이 극단적 시나리오에서 무너지지는 않는가. 전통 금융 출신들이 온체인으로 넘어오며 정작 값을 인정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들은 코드를 잘 짜서가 아니라, 시장이 비정상일 때를 감지하는 감각을 오래 훈련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직을 준비한다면 이력서에 스마트 컨트랙트 프로젝트 개수를 나열하는 것보다, 데이터나 모델을 의심해서 사고를 막았거나 반대로 놓쳐서 배운 경험을 구체적으로 정리해두는 편이 낫다. 면접에서 "이 오라클 값이 이상하다고 판단한 근거는 이거였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알고리즘 구현 능력만 나열하는 사람보다 지금 시장에서 더 오래 살아남는다. 온체인 금융이 성숙할수록, 코드를 짜는 손보다 데이터를 의심하는 눈에 값이 매겨진다.
AI 에이전트를 잘 다루는 사람보다, 안 붙이는 판단을 하는 사람 에이전트가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도구를 호출해 작업을 끝내는 수준까지 왔다는 이야기는 이제 새롭지 않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다들 "에이전트를 잘 설계하고 오케스트레이션하는 사람"이 몸값을 받을 거라 말하는데, 내가 최근 몇 건의 AI Tech·Deep Tech 채용을 진행하며 본 것은 조금 다르다. 정작 기업이 아쉬워하는 건 에이전트를 잘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어디에 에이전트를 붙이면 안 되는지 아는 사람이었다. 스마트 컨트랙트 감사 팀에서 벌어진 일 블록체인 인프라를 다루는 한 회사가 스마트 컨트랙트 감사 업무에 AI 에이전트를 붙였다. 반복적인 보안 점검과 최적화를 에이전트가 상당 부분 맡으면서 처리 속도는 눈에 띄게 빨라졌다. 그런데 반년쯤 지나 그 회사가 내게 의뢰한 자리는 "에이전트 파이프라인을 더 고도화할 엔지니어"가 아니라, "에이전트가 놓친 엣지 케이스를 판별할 시니어 감사 인력"이었다. 이유를 물으니 답이 명확했다. 에이전트는 알려진 취약점 패턴에는 강했지만, 계약 로직이 조금만 비틀려도 판단이 흔들렸다. 그 흔들림을 잡아낼 사람이 팀에 없어서, 오히려 감사 신뢰도가 떨어지는 역설이 생긴 것이다. 자동화가 늘수록 조직에 필요해진 건 자동화를 더 잘 시키는 사람이 아니라, 자동화의 한계선을 그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오케스트레이션 스킬은 이미 상품화되고 있다 이 지점에서 업계가 놓치는 게 있다고 본다. 여러 에이전트를 엮어 워크플로우를 설계하는 능력, 이른바 오케스트레이션 스킬은 지금은 희소해 보이지만 오래가지 않는다. 프레임워크와 툴링이 빠르게 표준화되고 있고, 이 능력은 23년 안에 지금의 '클라우드 인프라 구축 능력'처럼 기본 소양으로 내려앉을 가능성이 크다. 반면 도메인 판단력 — 특정 금융 상품의 리스크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어떤 계약 구조가 위험한지 몸으로 아는 감각 — 은 그 산업에서 오래 굴러본 사람만 가질 수 있다. 복제되지 않는 쪽에 값이 매겨지는 건 당연한 이치다. 그래서 이직을 준비한다면 에이전트 도구를 다뤄봤다는 이력서 한 줄보다, 그 도구가 낸 결과를 어디서 의심했고 왜 틀렸는지 짚어낸 경험을 구체적으로 정리해두는 편이 낫다. 면접에서 "에이전트가 이렇게 판단했는데 저는 다르게 봤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에이전트를 이렇게 설계했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보다 오래 살아남는다. 자동화가 표준이 되는 시장에서, 진짜 레버리지는 도구를 다루는 손이 아니라 도구를 의심하는 눈에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