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에이전트의 시대: 엔터프라이즈 도입과 커리어 전략의 전환
AI 에이전트를 잘 다루는 사람보다, 안 붙이는 판단을 하는 사람
에이전트가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도구를 호출해 작업을 끝내는 수준까지 왔다는 이야기는 이제 새롭지 않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다들 "에이전트를 잘 설계하고 오케스트레이션하는 사람"이 몸값을 받을 거라 말하는데, 내가 최근 몇 건의 AI Tech·Deep Tech 채용을 진행하며 본 것은 조금 다르다. 정작 기업이 아쉬워하는 건 에이전트를 잘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어디에 에이전트를 붙이면 안 되는지 아는 사람이었다.
스마트 컨트랙트 감사 팀에서 벌어진 일
블록체인 인프라를 다루는 한 회사가 스마트 컨트랙트 감사 업무에 AI 에이전트를 붙였다. 반복적인 보안 점검과 최적화를 에이전트가 상당 부분 맡으면서 처리 속도는 눈에 띄게 빨라졌다. 그런데 반년쯤 지나 그 회사가 내게 의뢰한 자리는 "에이전트 파이프라인을 더 고도화할 엔지니어"가 아니라, "에이전트가 놓친 엣지 케이스를 판별할 시니어 감사 인력"이었다.
이유를 물으니 답이 명확했다. 에이전트는 알려진 취약점 패턴에는 강했지만, 계약 로직이 조금만 비틀려도 판단이 흔들렸다. 그 흔들림을 잡아낼 사람이 팀에 없어서, 오히려 감사 신뢰도가 떨어지는 역설이 생긴 것이다. 자동화가 늘수록 조직에 필요해진 건 자동화를 더 잘 시키는 사람이 아니라, 자동화의 한계선을 그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오케스트레이션 스킬은 이미 상품화되고 있다
이 지점에서 업계가 놓치는 게 있다고 본다. 여러 에이전트를 엮어 워크플로우를 설계하는 능력, 이른바 오케스트레이션 스킬은 지금은 희소해 보이지만 오래가지 않는다. 프레임워크와 툴링이 빠르게 표준화되고 있고, 이 능력은 2~3년 안에 지금의 '클라우드 인프라 구축 능력'처럼 기본 소양으로 내려앉을 가능성이 크다. 반면 도메인 판단력 — 특정 금융 상품의 리스크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어떤 계약 구조가 위험한지 몸으로 아는 감각 — 은 그 산업에서 오래 굴러본 사람만 가질 수 있다. 복제되지 않는 쪽에 값이 매겨지는 건 당연한 이치다.
그래서 이직을 준비한다면
에이전트 도구를 다뤄봤다는 이력서 한 줄보다, 그 도구가 낸 결과를 어디서 의심했고 왜 틀렸는지 짚어낸 경험을 구체적으로 정리해두는 편이 낫다. 면접에서 "에이전트가 이렇게 판단했는데 저는 다르게 봤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에이전트를 이렇게 설계했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보다 오래 살아남는다. 자동화가 표준이 되는 시장에서, 진짜 레버리지는 도구를 다루는 손이 아니라 도구를 의심하는 눈에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