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직 연봉협상, 왜 혼자 하면 늘 손해 보나 — 화법보다 중요한 것

연봉협상 잘하는 법을 검색하면 화법이 쏟아집니다. 먼저 숫자를 말하지 마라, 침묵을 견뎌라, 경쟁사 오퍼를 흘려라. 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런데 15년 동안 후보자와 기업 사이에서 연봉을 조율해 본 입장에서 보면, 협상 테이블의 승패는 그 방에 들어가기 훨씬 전에 갈립니다. 화술은 마지막 5%고, 나머지 95%는 정보와 대안입니다. 이 순서를 거꾸로 알고 있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숫자부터 보겠습니다. 인크루트가 2025년 직장인 830명에게 물었더니, 연봉 협상을 진행한 사람은 절반가량(49.9%)에 그쳤고, 그중 64.7%가 결과에 불만족이라고 답했습니다. 인상된 사람의 평균 인상률은 5.4%. 더 눈에 띄는 건 다음 대목입니다. 조정 신청을 아예 하지 않은 사람이 78.3%였고, 그 가장 큰 이유가 '연봉이 인상되지 않을 것 같아서'(54.6%)였습니다. 열 명 중 여덟 명이 협상을 시작하기도 전에 스스로 포기했다는 뜻입니다.
협상을 포기하게 만드는 건 용기가 아니라 정보다
'인상되지 않을 것 같아서'라는 이 응답을 저는 오래 곱씹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자신감의 문제처럼 보이지만, 아닙니다. 정보의 문제입니다. 내가 지금 시장에서 얼마짜리인지 모르면, 회사가 제시한 숫자가 후한 건지 짠 건지 판단할 근거가 없습니다. 근거가 없으니 요구할 명분도 없고, 명분이 없으니 그냥 받아들입니다. 회사는 이 비대칭을 압니다. 재직자의 현재 연봉을 알고, 이 사람이 당장 옮길 곳이 없다는 것도 대개 압니다. 정보와 대안을 모두 쥔 쪽이 판을 짜는 건 당연합니다.
여기서 재직 중 연봉협상과 이직 연봉협상의 결정적 차이가 나옵니다. 재직 협상에서 내가 가진 카드는 '나가겠다'는 위협뿐인데, 이건 대개 공허합니다. 정말 갈 곳이 있어야 무게가 실리니까요. 반면 이직 협상은 이미 나를 원하는 다른 회사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카드입니다. 협상학에서 말하는 배트나(BATNA), 즉 '협상이 결렬돼도 내게 남는 최선의 대안'이 실재하는 겁니다. 잡플래닛이 헤드헌터들에게 물은 조사에서 연봉을 높이려면 이직이 유리하다는 데 71%가 동의했고, 이직 시 평균 인상률로 '20%에서 30%'를 꼽은 응답이 가장 많았습니다(36%). 재직 협상의 평균 5.4%와 나란히 놓으면 격차가 선명합니다. 같은 사람인데 어느 테이블에 앉느냐에 따라 자릿수가 달라집니다.
헤드헌터가 연봉을 올리는 건 말을 잘해서가 아니다
흔한 오해가 하나 있습니다. 헤드헌터가 후보자 연봉을 잘 받아내는 건 대신 강하게 밀어붙여 주기 때문이라는 생각입니다. 현장 감각으로는 정반대입니다. 헤드헌터가 만드는 건 압박이 아니라 정보의 대칭입니다.
내가 후보자를 대리해 협상에 들어갈 때 나는 이미 세 가지를 알고 있습니다. 이 포지션에 회사가 배정한 연봉 밴드의 상단과 하단, 앞서 탈락하거나 오퍼를 고사한 다른 후보들의 대략적 몸값, 그리고 회사가 이 자리를 얼마나 급하게 채워야 하는지. 후보자 혼자서는 결코 알 수 없는 정보입니다. 작년에 한 제조업 후보자는 회사가 처음 제시한 숫자를 그대로 수락하려 했습니다. 스스로는 충분히 높다고 느꼈으니까요. 그런데 그 자리의 밴드 상단은 제시액보다 훨씬 위에 있었고, 회사는 3개월째 그 자리를 못 채우고 있었습니다. 그 두 가지 사실을 근거로 조율한 결과, 처음 숫자보다 눈에 띄게 올라간 선에서 정리됐습니다. 후보자가 갑자기 말을 잘하게 된 게 아닙니다. 판돈의 크기를 알게 됐을 뿐입니다.
역설적이지만 헤드헌터는 후보자의 아군이면서 동시에 그 후보가 무리한 요구로 딜을 깨는 걸 막는 역할도 합니다. 나는 이 회사와도 다음 거래를 해야 하므로, 양쪽이 다 납득하는 선을 찾는 데 이해관계가 걸려 있습니다. 감정이 상하기 쉬운 돈 이야기를 제3자가 대신 조율하면, 후보자는 입사 첫날 마주칠 상사와 얼굴 붉힐 일 없이 협상을 끝냅니다. 이 완충 효과는 숫자에 안 잡히지만 실제로 큽니다.
그래서 연봉협상 전에 무엇을 해야 하나
내일 당장 쓸 수 있는 조언으로 정리하겠습니다. 협상 멘트를 외우기 전에, 내 시장가를 확인하세요. 같은 직무, 비슷한 연차의 실제 오퍼가 어느 선인지 모르면 어떤 화법도 허공을 칩니다. 둘째, 대안을 하나라도 실재하게 만드세요. 지금 이직할 생각이 없더라도, 나를 부르는 자리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재직 협상의 무게를 바꿉니다. 셋째, 돈 이야기를 대신 조율해 줄 통로를 확보하세요. 재직 중일 때 시장을 아는 헤드헌터와 연결해 두면, 오퍼가 왔을 때 밴드 상단과 경쟁 상황을 근거로 협상할 수 있습니다. 첫 연락이 부담스럽다면 헤드헌터 통해 이직하는 법을 먼저 읽어보길 권합니다.
인크루트 조사에서 연봉 협상 뒤 퇴사 충동을 느낀 사람이 52.2%였고, 그중 92.6%가 협상 결과를 이유로 이직을 시도할 계획이라고 했습니다. 협상에서 진 사람들이 결국 회사를 뜬다는 얘기입니다. 그렇다면 순서를 바꾸는 게 낫습니다. 협상에 지고 나서 이직을 고민할 게 아니라, 이직 카드를 손에 쥔 채로 협상 테이블에 앉는 것. 연봉협상의 기술은 방 안이 아니라 방 밖에서 완성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연봉협상은 화법이 정말 중요하지 않나요? 전혀 안 중요하진 않지만, 우선순위가 낮습니다. 아무리 매끄럽게 말해도 내 시장가와 대안이 없으면 상대가 제시한 틀 안에서만 움직이게 됩니다. 반대로 근거와 대안이 탄탄하면 어눌하게 말해도 협상은 유리하게 흘러갑니다. 화법은 준비된 정보를 전달하는 도구일 뿐, 그 자체가 협상력을 만들지는 않습니다.
Q. 재직 중인데 연봉을 올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현재 회사에 남으면서 연봉을 크게 올리기는 구조적으로 어렵습니다. 인크루트 조사의 평균 인상률이 5.4%에 그친 것도 그래서입니다. 다만 나를 원하는 외부 오퍼가 실제로 있으면 재직 협상의 설득력이 달라집니다. 당장 옮길 계획이 없더라도 시장에서 내 위치를 확인해 두는 것만으로 협상의 출발선이 바뀝니다.
Q. 헤드헌터를 통하면 연봉을 더 받을 수 있나요? 헤드헌터는 회사가 배정한 연봉 밴드, 경쟁 후보 상황, 채용 시급성 같은 정보를 알고 협상에 들어갑니다. 후보자 혼자서는 접근하기 어려운 이 정보가 협상의 근거가 됩니다. 또 민감한 돈 이야기를 제3자가 조율해 입사 전 관계가 상하는 것도 막아 줍니다. 다만 결과는 후보의 실제 역량과 시장 수요에 달려 있으므로 무조건 오른다고 보장할 수는 없습니다.
Q. 헤드헌터에게 연봉협상을 맡기면 비용이 드나요? 후보자는 대개 비용을 내지 않습니다. 헤드헌터 수수료는 채용에 성공한 기업이 지불하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함께 읽으면 좋은 글'의 수수료 편을 참고하세요.